현포(玄圃) 김석구(金錫龜)
1653년(효종 4)∼1718년(숙종 44).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몽뢰(夢賚)이고, 호는 현포(玄圃)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월천리(月天里)에서 태어났다.
중조(中祖)인 신암(愼菴) 김탁(金琢)은 벼슬이 도첨의(都僉議)와 좌시중(左侍中)에 이르렀다. 이름을 남긴 선조로는 세종 조에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단종의 비보(悲報)를 듣고 6일간 단식하다가 세상을 뜬 龍崗 김수연(金壽延)이 있으며, 예종조에 식년시 정과에 급제한 후 북청부사와 제주목사 등을 지낸 수연의 자 김호인(金好仁)인 등이 직계 선조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에서 효도하였고 자라면서 오서오경(五書五經)을 통달하였는데 특히 서예에 뛰어나 팔분(八分)을 잘 써서 당시 무덤에 사용되는 전서(篆書)를 대부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던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송시열·송준길·윤선거(尹宣擧)·유계(兪棨)와 더불어 호서산림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손꼽았던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1607∼1684)의 문하에 출입하였는데 당시 우의정(右議政)이었던 이유태가 항상 그를 극찬하였다.
현포亭舍
무안군 현경면 현화리에 거주한 현포(玄圃) 김석구(金錫龜)가 벼슬의 뜻을 버리고 자신의 학문 연마와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지었던 곳으로 근대 개축하여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어 현재는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玄圃先生文集
함경도 도사를 지낸 권대임의 북정기에 선생의 서신이 여러 편 등장하는데 후대에 이를 정리한 현포선생문집(玄圃先生文集)이 전해지고 있다.
『북정기(北征記)』는 권대임(權大臨 ; 1659~1723)이 함경도 도사를 제수 받고 신미년(1691년) 7월 13일 함경도로 가면서 쓴 10월 27일까지의 일기이다. 함경도까지 여행하면서 지나가는 고을의 연혁, 역대 인물, 그들이 지은 시, 지명유래 등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일기 뒤편에 「망운대시서(望雲臺詩序)」와 「칠우정기(七友亭記)」가 실려 있으며, 갑술년(1694년) 5월 19일의 일기가 실려 있다.
이 일기에 남구만, 장희재 등 당시 정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도 거론되며, 이현석이 올린 상소문이 초록되어 있다. 초서로 필사하여 읽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나 일기 중간에 국한문 혼용시조도 들어있어 흥미를 더한다.
권대임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만용(萬容), 호(號)는 칠우정(七友亭), 영해 송천(松川)에 거주하였다. 송천(松川) 득여(得與)의 아들로 이현일의 문인이다. 1683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이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통사랑, 선무랑이 되어 박사(博士)에 오르고 전적을 거쳐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이듬해 예조와 병조좌랑을 역임하고 함경도도사에 재직하였으며, 1702년 형조정랑에 올라 춘추관기주관이 되었고 이어 만경(萬頃), 보령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서문유(徐文裕), 황석래(黃石來), 정필시(鄭弼時), 김석구(金錫龜) 등과의 서신 왕래가 문집 4권 2책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