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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보
작성자 총무이사
작성일 2017-03-15 (수) 13:05
ㆍ조회: 1584      
무안읍지 선조님 기록
무안군지
무안출신 급제자 명단 (사마)

김적 나주 진사 월강 대경의 후
명종 노몽호 함평 진사 진사성지의 손
김혁 고성 진사 찰제 명의 사
홍진 남양 진사 문정공 언박의 후
노검세 함평 진사 진사 성지의 후
김원 나주 진사 제용점 수남의 자
김세상 김해 진사 호조좌랑 증형판
서간 이천 생원 진사 설의 제
김충수 나주 생원 취암 적의 자
정진 나주 생원 교리 수곤의 후
서설 이천 진사 참봉 인의 자
유자건 문화 진사 충경공 량의 후
김수정 고성 진사 찰재 명의 손
서인준 이천 생원 절효공 릉의 후
선조 배휘 달성 진사 참봉 회의 손
나덕원 금성 진사 송재 세찬의 손
나덕기 금성 진사 진사 덕원의 제
나덕립 금성 진사 진사 덕원의 제
김덕수 나주 진사 취암 적의 자
정현보 이천 생원 절효공 릉의 후
서경인 이천 진사 생원 간의 자
나덕명 나주 진사 금호 사치의 자 


무안읍지

忠義 김종현
선생의 자는 경천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본관은 김해이니 임란절신 휘 세상의 십세손이며 효자 난저공 휘 영학의 아들이다.
천품이 박아하고 총기절인하여 경학에 깊고 성리에 밝았으며 시부와 사서에 능하였다. 갑오 동요이후로 벼슬에는 뜻하지 않고 임천을 소요자적하면서 자제하니 초당전월명야에 아회사유수지아 지엽엽하고 송울울혜하니 가료기가서지라 하여 개탄하였다. 선생은 도학의 명성이 높아 지현조공종서가 공가상요하여 도의를 담론하였으며 또한 도내장보가 선생의 도학과 문장을 찬양한 문집인 송은실기가 간행되었다. 아들 재환(호 막헌)의 유지로 손 정호(호 성암)가 송은당을 세워 후손들이 보존하여 오면서 선생의 유덕을 기리고 있다.

南道 정자, 무안 송은당(松隱堂)
2003년 중추절, 추석을 맞는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는 고향을 찾은 이들의 차로 마을이 오랜만에 북적였다.
큰 도로변에 월선리 1구에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얼굴에는 여유로운 눈빛이 역력했다. 마을 중심부 월선정(月仙亭)이 자리하고 있었다. 출입하는 사람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조망이 좋은 곳에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었다.
정자 왼편에는 '운중인월선인독서(雲中因月 仙人讀書)'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 마을의 유래를 엿볼 수 있는 문구다.
신라말의 승려이며 조선의 건국을 예언하는 등 한국 풍수의 시조이며, 풍수설의 대사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전국을 답사하며 두 발로 남긴 천하의 명당 기록에 남긴 천 년의 비기(秘記)에 이 일대를 두고 '구름 곳에 달을 가두고 신선은 독서를 한다'의 뜻으로 ' 에서 월(月) 선(仙)을 따서 월선리라고 마을 이름을 정했다 한다.
그래서 였을까. 주변에는 승달산, 법천사 목우암과 같은 유명사찰과 명산이 있으며 승달요(도자기체험), 월선서당(한문,서예 등), 송광다회 등 전통적 문화가 숨 쉬는 곳이다.
월선2리 중화마을은 중화(重華)라는 절을 지을 때 상량문을 보고 모든 일을 성실히 행하여 자자손손 빛나라는 뜻에서 마을이름을 중화(重華)라 하였다. 이 마을 안쪽 마을은 월선1리로 행복마을로 전통가옥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중화마을은 최초 입향 성씨는 김해김(金海金)씨로 본래 나주(羅州) 봉계(鳳溪)에서 살았는데 김시운(金始雲)의 부(父) 승황(承黃)와 조(祖) 안세(安世)가 壬亂·丁酉亂 때 많은 공을 세우고 전사하자 이곳에 묘원(墓園)을 만들기 위하여 이거(移居)하였다 한다.
유물, 유적으로 입석(월선리 당산제의 신체(神?)있고 열부현풍곽씨비(烈婦玄風郭 氏碑 1890년)과 1942년 명유였던 조부 김종현(金鍾炫 1845~?)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김정호(金正鎬)가 지은 효를 위한 정자로 1975년 중건한 송은당(松隱堂 1855~?)이 나란히 소나무와 동백나무 숲으로 우거져 마을 동편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그 모습이 "봄물은 연못에 가득하고 / 여름 구름은 산봉우리들처럼 떠 있네.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비추고 / 겨울 산마루엔 큰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네.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高松"라는 도연명 陶淵明(365-427)의 사계절’(四季節) 시가 연상되는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김종현도 기쁜 비(희우)를 유유자적하며 읊어냈다.
수양버들 드리운 골목길 가볍게 적셔주네/이제 위안을 받고 무지개를 바라보니 이슬비 내리는 컴컴한 2월의 봄에/언덕 위의 보리밭이 푸르고 푸르러 도처가 새롭구나.
細雨濛濛二月春 垂楊門巷挹輕塵 從今慰得雲霓望 麥隴靑靑到處新

송은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제각형태를 갖추고 모두 내실로 구성됐다. 송은실기와 송은당원운 등의 무려 33편의시문이 전하고 있다.
송은당의 일대를 탐방하면서 느끼는 것은 독서라는 환경이 제격이라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있다. 이곳에 들린 무안군 일로읍 산정리 출신 소석 정풍섭(丁豊燮1882~1968)의 시에서 김종현의 귀거래사 같은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숨어살면서 날을 보내려면 바둑만 같음이 없느니 /뜬 세상 공명들은 다 알지 못하겠구나.
약 캐러 구름 깊은 곳에 드니 사람들 다시 있고 /새농 열어 학은 날아갔으나 손은 오찌 더디게 오는가.
隱居消日莫如碁 浮世功名渾不知 採藥雲深人復在 開籠鶴出客何遲
서늘한 기운 머리맡에 부는 것은 바람이 스친것이요 /엇갈린 그림자 창에 비침은 나뭇가지에 달 뜬 것이라네.
밭 갈고 글 읽으며 평생을 숲 아래서 즐기니 /이 주인 맑은 절개 가히 글로 전한다네
微凉動枕風過葉 交影暎窓月上枝 耕讀平生林下樂 斯翁淸節可傳詩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목동처럼 숨어 살고 싶다고 해서 목은(牧隱)이라고 했다는 이색(牧隱 李穡)이 생각하는 독서하는 의미에 공감이 간다.
글읽기란 산에 오르는 것 같아 /깊고 옅음이 모두 自得함에 달려있네
맑은 바람은 천천히 하늘에서 불어오고 /나는 우박은 어두운 곳에서 내려오네
讀書如遊山 深淺皆自得 淸風來徐寥 飛雹動陰黑
검은 교룡은 깊은 못에 서려있고/붉은 봉황은 하늘로 날아오르네
정미(精微)한 열여섯 글자 /분명하게 가슴에 간직하네
玄규蟠重淵 丹鳳翔八極 精微十六字 的的在胸臆
다섯 수레의 책 읽어서 돕고 /능히 하늘의 이치를 본다네
옳은 기풍 오래도록 쓸쓸하고 / 큰 길은 가시나무에 가려있네
뉘 알랴, 봉창(蓬窓) 아래에 책을 덮고 길이 탄식하는 것을
王風久蕭索 大道예荊棘 誰知蓬窓底 掩卷長太息 輔以五車書 博約見天則

석대정, 노월촌, 일신동 마을과 함께 4년마다 한 번씩 지내는 월선리 당산제의 민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을 앞 입석은 下馬婢와 같은 구실을 해 왔었다고 전함, 현풍 곽씨열부비와 연관된 유적이기도 하다.
마을은 황토로 벽을 쌓고 초가지붕을 이은 전통적인 흙집이라 예스러움과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농촌전통 마을로 주민들이 푸른 생명의 농사 ‘친환경 유기농’을 실시한 이후 마을에는 사려졌던 딱따구리와 반딧불이가 다시 찾아오는 등 청정한 마을로 변모하게 되었다.
또한, 월선리는 전통문화와 관광지가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많아 젊은 세대들도 전통 문화의 맥을 이어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켜 마을 발전에 힘을 기울리고 있다. 그중 예술촌은 말 그대로 예술인들이 모여산다. 방학엔 한문학당, 예절학당을 운영하고, 주말엔 도예체험과 짚물 공예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고향의 향수를 맛보도록 연날리기, 떡메치기, 서당체험도 할 수 있다.
이 일대의 황금들판은 추석 후 이어지는 바쁜 추수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가을판에는 대부인 마님도 나막신을 들고 나선다.’그만큼 가을 추수는 바쁘다는 이야기다. 가을에 거두지 못하면 1년 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호젓한 논두렁을 걷는 나그네는 그 속도 모르고 그냥 좋다고 흥얼거리고 있다.
집집마다 들밥 내가니 고사리가 향기로워라 / 먹고 나서는 밭머리서 웃으며 얘기 나누네
참으로 금년에는 봄비가 넉넉히 내렸기에 / 두레박틀이 한가히 서서 석양을 보내는구나 家家野飯蕨芽香 饁罷田頭笑語長 可是今年春水足 桔槹閑立送斜陽-사가시집 제3권
송은당을 내려다보면 외로이 서있는 소나무, 무안출신 최택현(崔澤鉉1857~?)이 읊은 고송(孤松)이라는 시를 음미하게 된다.
우뚝 서서 굳세게 한 겨울을 지내니/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하고 또한 아름답게 여기네.
사람의 돌봄 없이 절개 지켜 일반 풍습에 /물들지 않으니 외로운 학 날아와 평안하게 잠드네. 特立亭亭卒歲寒 爲人愛惜住黎丹 天然晩節終無俗 孤鶴泛來止宿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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